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4.11총선 평화․통일 후보 수난기
    이전연재글 2012.05.09 11:29

    ***

     

    2004년 17대 총선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한나라당이 역풍을 맞으며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민주노동당이 제3당의 지위에 오르며 마무리되었다. 술렁이던 당시의 분위기는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면 절차적 민주주의 차원에서 ‘역사의 종언’에 가까웠다. 돌아보면 역사의 종언은커녕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야트막한 고지였을 뿐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판단할 만한 경험적 한계와 맥락에 놓여 있었다.

     

    《민족21》은 2004년 17대 총선 직전에 평화․통일 후보를 선정해 발표했다.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당한 특집 기사였고 총 30명의 후보를 선정했다. 과연 누가 올바른 관점과 실천력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할 것인가. 지금이야 굴곡의 세월을 거치며 옥석이 많이 가려졌다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민족21》기사가 국내외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암울했던 2008년은 건너뛰고 《민족21》은 지난 4.11총선을 앞두고 다시 평화․통일 후보를 선정했다. 그런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예비후보가 넘쳐나고 각 정당의 공천과 야권단일화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3월호에는 서울지역 예비후보로 한정해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4월호에는 전국단위 야권 단일후보 중에서 30명 가까이 선정했다. 전체 합쳐 50여명이니 산만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고 하는 기준을 세우기가 곤란했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던 탓에 누구도 구체적인 성과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적과 성향, 입장 표명이나 발언 등이 선정의 기준이 됐다.

     

    ***

     

    안타깝게도 평화․통일 후보들의 당선율은 극히 낮았다.(대략 10% 조금 넘는다.) 사무실에서는 평화․통일 후보 선정이 일종의 ‘저주’가 된 것이 아니냐는 농담이 오고갔다. 웃자고 한 농담치고는 뒷맛이 텁텁한 농담이었다. 두 달에 걸쳐 평화․통일 후보 선정 때문에 골머리를 썩었는데 결과라도 좋아야 할 것 아니야!!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가장 평화.통일에 기여할 만한 당선자'로 꼽히는 홍익표 당선자.(사진출처. 홍익표 당선자 블로그)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평화․통일에 기여할 만한 당선자’는 평화․통일 후보에 선정되지 않은 사람 중에서 나왔다. 서울 성동구을의 홍익표 당선자였다. 민주통합당 임종석 전 사무총장이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뒤늦게 선거에 뛰어든 홍익표 당선자는 선거운동 20일 만에 본인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이루었다. 총선이 끝난 직후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홍익표 당선자를 인터뷰했다. 기적과도 같은 선거 승리는 기쁘지만 앞날에 대한 걱정도 컸던 홍익표 당선자, 승리한 선거운동본부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왔다.

     

    ***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19대 국회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전력을 기울일 당선자는 소수다. 본선에서도 많이 떨어졌지만 본선 전에 이미 많이 걸러져 나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정책을 보면 한반도 평화․통일이 민생 다음으로 2순위라 할 만하다. 그런데 2순위에 걸맞게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공천을 하고 역량을 배치한 것 같지는 않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각 정당 내부의 사정도 있을 테고, MB정권 하에서 통일 분야 일꾼과 전문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웠던 상황 탓도 있겠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가 민생과 같은 ‘생활적 요구’ 반열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는 여전히 ‘이념적 요구’ 수준에 묶여 있다. 이는 대북정책에 대해 입을 다물고 집요하게 민생을 내세웠던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요인과도 관련이 있다. 각 정당들은 평화․통일 후보들을 많이 공천하고 당의 얼굴로 내세워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식의 여론의 압박을 받지 않았다. 민생과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가 분리된 것, 이것이 이번 총선을 지켜보며 느꼈던 아쉬움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런 생각도 든다. 민생의 핵심은 경제민주화일 텐데, 경제민주화에 대해 진정한 의지와 전문성을 지닌 당선자는 얼마나 될까. 민생을 말하면서 각 정당은(특히 새누리당은) 그러한 후보자를 몇 명이나 공천하고 내세웠나. MB심판과 민생 중 19대 총선에서 국민들이 선택한 화두는 민생이었다. MB심판을 목청껏 외치던 야권은 패배의 쓴 잔을 마셨다. 하지만 그 요란하던 민생도 립서비스로 끝날 공산이 크다.

     

     

    댓글 0

Designed by Tistory.